2014. 11. 19(수) - 12. 16(화)
신동원
/ SHIN, DONG WON "ON THE WAY HOME"

 

       
 

늦여름...갈대, 28 x 48 x 36cm, 자기, 2014(좌) / 바람...불다, 28 x 48 x 36cm, 자기, 2014(우)

 

들풀이 말했다
황록주(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하얀 도자기 위에 짓이겨진 풀 같은 상감이, 박힌 듯 스민 듯 눈에 들어온다. 언뜻 눈밭 위에 제 온기로 몸을 드러낸 겨울의 잡목 같아 보이기도 하고, 봄 나절 흰 쌀가루와 범벅이 되어 향내를 풍기는 쑥버무리와도 닮았다. 어느 것이 되었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그래서 마음을 멈칫하게 만드는 풍경이다. 그 위로 분명 단내 나는 바람도 한 줄 불어줄 것이다. 보고 돌아서면 괜스레 쓸쓸하고, 또 따뜻할 것이다. 집 모양을 하고 서 있는 흰 도자기에 들어앉은 대단치 않은 풍경이 주는 이 먹먹한 충만은 무얼까. 고향 계신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기분이다.
작가 부부가 함께 작업실 삼아 쓸 집을 찾아 이사를 한 것이 새로운 작품의 시작이었다. 인적이 많지 않은 곳에 제법 몇 평 되는 마당이 들어앉은 집이라 봄부터 잔디 사이로 민들레와 토끼풀이 돋았다. 처음에는 잔디를 돌볼 요량으로 몇 번 걷어내었지만 무리의 수와 생명력은 사람의 손을 넘어서는 분량이었다. 무던히도 이 잡풀들과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그 녀석들이 말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흙에 뿌리를 두고 피어난 그야말로 잡스런 꽃들이 저도 한 철은 살다가는 생명이라고 낮게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작가 신동원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흙에서 생명을 키워 올리는 사람이다. 흙은 잡꽃도 피우고, 도자기도 키운다. 자연스럽게 잡풀을 만난 집과, 잡풀과 도자기를 키우는 흙과, 집 마당의 흙에서 피어난 꽃이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것이 신동원 작가가 10여 년 만에 세상에 새롭게 내놓은 작품이다.


신동원 작가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형의 그릇을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만들어 설치하는 작품을 해왔다. 주인공인 음식이 아니라, 그 배경이 되어주는 도자기의 담박한 존재를 통해 도자기와 어우러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품들이었다. 작가의 오랜 바람처럼 도자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간의 작업이었다.
그런데, 2013년 겨울, 10여년을 변주하던 그녀의 작품에 아주 큰 변화가 생겼다. 일단 작품의 기형이 그릇을 넘어섰다. 흙으로 만드는 도자기의 개념적인 형상을 평면화된 형태로 보여주었던 이전의 작품과 달리, 이제 흙이 한 채의 집을 짓는다. 먹을거리가 담기는 것이 그릇이라면, 집은 사람이 담기는 그릇이다. 삼각 지붕을 얹고 있던, 깍둑깍둑 머리를 자른 아파트건, 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휴식을 주는 곳으로 존재한다. 도자기를 통해 사람을 이야기하더니, 아예 그 도자기와 사람이 모두 함께 사는 공간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집 또한 흙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흙 위에 서 있는 집에서 흙에 뿌리내린 들풀들과 함께 흙으로 만든 도자기에 담긴 음식을 먹고 사람은 살아간다.
흙으로 만들어 불에 구워낸 집은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모양새를 닮았다. 우리는 집에서 홀로든 여럿이든 개인적인 역사를 만들어간다. 그 역사는 모두에게 공유되거나 누구에게나 유의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제 나름 굉장히 치열한 내적 싸움의 결과다. 우리의 삶은 들끓는 도가니에서 녹아버리는 쇳덩어리이거나 체온의 300배를 넘나드는 온도의 가마 안에서 묵묵히 소성되는 도자기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도록 차고 단단하게 굳어 있는 집 모양의 도자기는, 그저 저 또한 하나의 그릇이라 말한다. 뭔가를 담아내는 크기가, 또한 그것이 발 딛는 터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 덤덤히 말한다. 그러니 이 기막힌 기형의 변화를 과연 굳이 ‘변화’라는 말로 단순화할 수 있을까.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오는 변화는 그리기의 방식이다. 이전에는 각각의 도자기를 한 데 어우러지게 하여 하나의 도자기 그림을 완성했다. 하지만 이제 작가는 도자기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언젠가 고백하였듯, 신동원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작가였다. 도자기를 만들면서 그것으로 그림을 그리려니, 도자기 그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필을 들고 흙덩이 위에 과감히 그림을 그린다. 흙판 위에 종이를 얹어놓고 연필로 그림을 그리면, 흰 종이에는 연필로 된 그림이 남고, 흙 위에는 그대로 그 그림이 새겨진다. 얇게 새겨진 자리 위로 상감토를 넣고 그림의 흔적을 다시 흙으로 메운다. 그림의 기운에 따라 새겨진 자리 너머로 바람처럼 안개처럼 흙이 넘나들기도 한다. 그 위로 유약이 얹어지고 불길을 넘나들면, 어느새 작가가 그린 그림은 도자기와 하나가 된다.
역사적으로 이름난 도자기에 이름난 작가가 없는 것은 그것이 어느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점토의 성질과 기형의 수려함, 그 위에 문양을 새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이의 손끝, 가마의 온도와 불 때는 이의 숙련도, 좋은 유약을 만드는 기운, 그 어느 것 하나 흐트러져서는 안 될 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자기는 다만 어느 시절, 어느 가마터에서 생산된 것이냐를 묻는 방식의 명성만을 후대에 남겼다. 왕실 화가인 화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관요(官窯)에서 구워낼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는 사실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 신동원 작가는 도자기 위에 그림을 직접 그린다. 본래 신동원은 그림을 잘 그리는 작가다. 그리고 싶은 열망이 큰 작가였다. 도자기를 만나 그 열정이 흙을 만지는 일로 자연스레 옮겨갔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서로 얽혀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직접 흙 위에 그림을 그린다. 흙판에 새겨지는 그림은 한 번 그리고 나면 지우고 수정할 수 없기에, 완성된 도자기에 남겨진 모든 그림은 한 붓에 그려진다. 무성히 번져가는 들풀의 생명처럼 단 한 순간도 멈추거나 뒤로 물러설 수 없는 호흡이 이어진다. 묘사하는 것(describing)이 아니라 새기는 것(inscribing)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은 어떤 형상을 그대로 가벼이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눈여겨보지 않던 생명이 사람과 삶을 다투는 과정을 거치며 얼마나 강인하게 살아남는가를 그렸을 것이다. 무엇이든 살아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민들레, 토끼풀, 쑥부쟁이 같은 미약한 존재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 아니라, 셋, 넷, 다섯이 무더기무더기 피어오르면 풍경화도 되고, 산수화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흙에 뿌리박은 풀들을 한 없이 부드럽게 흙에 새겨 그 무엇보다 강한 생명의 숭고함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무 해를 손끝에 유보해두었던 신동원의 그림은, 그렇게 그녀가 오랫동안 바랐던 별 것 아닌 것들도 숨을 쉰다는 말을 전하려 들풀처럼 꽃을 피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자기들은 단일한 작품 하나로도 충분히 완벽하지만, 몇몇의 작품들은 여러 개를 연이어 설치하는 모습으로 계획되기도 한다. 저기서 바람이 불어오면 서서히 풀이 일어서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 들풀끼리 뭉치고 뭉쳐져 솟아오르다, 다시 조용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드러눕는 그림이 여러 개의 도자기에 걸쳐 호흡하듯 그려져 있다. 굳이 단박에 모든 것을 말하겠다는 욕심 따위 놓은 지 오래다. 이미 이전 작품에서부터 작가는 그릇과 그 릇을 서로 쌓고 담으며 상호간에 대화하듯 설치해왔기 때문이다. 그 그릇이 조금 달라졌다 하여 모든 것을 한 번에 담아낼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릇이 담아내는 존재들의 덩치가 커진 만큼 더 많은 이웃을 필요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 삶 어디에 독불장군이 있어 홀로 숨 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다만 너를 앞세워 존재할 뿐이다. 그 존재의 터전이 되는 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에게나 온화하다. 거칠어 보이지만 한 없이 부드럽고, 무르고 연해 보이지만 불길 속에서 그 무엇보다 강하게 진실을 말한다.

이제야 알겠다. 신동원은 새 작업을 목전에 두고, 흙이 자신에게 무엇인지를 알아보겠노라 말했었다. 또한 도자기를 만들면서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았던 몇몇 방법을 다시금 연구하겠다 했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인생을 20여 년 달려온 작가가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은 무엇이었겠으며, 늘상 손에 달고 사는 흙은 또 얼마나 새로울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말 알겠다. 흙은 새롭게 시도하는 형상의 터전이며 그것을 이루고 있는 물질이자, 그 안에 담긴 그림 속 주인공인 들풀의 어머니다. 터전의 흙 위로 스스로를 돌아보듯 아프게 새긴 흔적들은 다시 또 다른 흙으로 채워져 비로소 하나를 이룬다. 이 작품들은 그동안 보아왔던 신동원 작업의 기본적인 모습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흙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답하고 있는 것이다. 딛고 사는 흙이 변하고, 작가는 그 변화가 주는 인생의 실마리를 예민하게 포착해냈다. 들풀 한 무더기의 말을 예사롭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행위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임을 잊지 않는 것 말이다.

세상은, 만능을 요구한다. 그야말로 여러 분야에 걸쳐 만 가지 일에 능통한 이를 현대적인 인재라 부추겨 세운다. 그런데 그 만능은 좀 수상하다. 어떻게 사람이 다양한 분야에 모두 능할 수 있단 말인가. 인터넷이 제아무리 지식을 상아탑에서 해방시켰다 하더라도, 한 분야에 오래도록 몸담아 지식과 호흡과 손짓이 하나가 되는 섬세한 일들에 모두 만능일 수 있겠는가. 사실 만능이라는 말은 좀 달라야 한다. 만능이란 하나의 역할을 위해 완벽해지는 것, 만능을 위한 만능이 아니라, 그 하나의 완벽을 위해 만능을 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동원을 떠올려본다. 몇 차례 작가를 만나면서 도자기를 짓는 사람이니 혹 그릇을 직접 만들어 쓰시지는 않느냐 물었더니, 하고 있는 작품에게만 쓸 만한 재주라 그릇 만드는 일은 또 그릇을 잘 만드는 이의 몫이라 말한다. 본인이 하고 있는 작업 또한 작품 크기에 따라 흙의 종류와 가마의 온도를 바꾸어야 하겠다며, 계획하던 작품 일부를 잠시 접어두었다 한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목마르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목소리는 한 없이 낮으면서, 그나마 인생에서 건진 것이 겨우 이만큼이라 내민 손에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제 손금을 그리고 있는 사람 말이다. 평생 흙을 만지며 흙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는 사람, 혹은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는 사람 말이다.

그 사람에게 들풀이 말했다. 나는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생명이다. 겁 없이 한 철을 지내다 다음 해를 기약하지 못하고 떠난다. 그러나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있는 힘을 다해 무성할 것이다. 곁눈질하지 않고 삶에 치열할 것이다. 한낱 풀무더기이지만 숲을 이루고 산수화가 될 것이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 들풀에게 작가가 말한다. 나는 너를 통해 삶의 근원인 흙을 만난다. 내 존재의 엄연한 현실인 흙을 마주한다. 너의 뿌리와 나의 뿌리는 그러므로 동일하다. 무성하여라. 너의 의지만큼 나도 매해 꽃피우는 너를 기다릴 것이다. 너의 무한한 젊음과 지극한 늙음을 주저 않고 대면하리라. 그러한 너를 통하여 나는 흙으로 완벽해질 것이다.

 

 

The Parable of the Wild Grass
Hwang Rockjoo | Art Critic, Curator of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The inlaid work on white pottery that is reminiscent of trampled grass, looks like it is smeared or engraved onto the surface. The shapes on the work resemble a winter tree whose warmth reveals its presence on a field of snow or the scent of spring mugwort mixed with white rice flakes. Whatever we call it, the work evokes our memory, becoming a scenery that holds our emotions. It is a scenery where sweet breezes pass by - leaving us lonely -, yet it is also imparts warm feelings, when we turn away our eyes from it. The humble scenery of the house-shaped white pottery arouses a dazed fullness, like the trip back from visiting a mother in a hometown.

Shin’s new project started when the artist couple moved into their new house, which doubled as their artist studio. Isolated from human traces, since the springtime dandelion and clover were growing amongst the grass in their spacious backyard. At first, she weeded several times in order to groom the lawn but the number and vitality of the wild grass was substantial. Struggling with the grass, Shin started to listen to stories of wild grass. The wild flowers were quietly testifying their ephemeral yet tenacious lives rooted in the soil. Shin is a ceramic artist who gives birth from soil. The earth not only constitutes the basis for ceramics but also blooms wild flowers. The house with wild grass, the soil that nurtures both wild flowers and ceramics, and the flowers growing from the soil in their backyard have fused into a piece of artwork. This is Shin’s new work of ten years.

Shin has been making installations out of pottery that have familiar shapes in flattened forms. Through the work that alludes to the humbleness of pottery as mere ? background ? container (pointing to food), Shin attempts to tell stories about people in harmony with pottery. Creating drawings out of pottery has been Shin’s art practice and her long time enthusiasm.

In the winter of 2013, there was a huge change in the variation of her practice since 10 years. First of all, Shin started creating works that were not in the shape of dishes. Unlike her previous work showing conceptual ceramics in flattened forms, Shin is recently creating houses out of clay. As dishes contain food, as vessels houses contain humans. Whether it has a triangular roof or is the square box of an apartment, all types of houses are shelters for humans - where they sleep, eat, rest and share their stories. If Shin’s previous practice was to tell stories about people through pottery, now she is creating a space where pottery and people live together. Houses are also rooted on soil. People live with wild grass in houses grounded on the soil, while eating food contained in ceramics made of earth.

Houses made out of pottery resemble our lives. We make personal histories in houses, alone or with other people. These histories are the result of fierce inner struggles (even though they cannot be shared or understood by everyone). Our lives are like metal in a melting pot or pottery that forms its shape in a hot kiln that is around 300 times our normal temperature. Likewise, the house shaped ceramic, which is now cooled down and firm, went through unimaginably intense heat - just like any other piece of pottery. It speaks in a humble voice, that it is just a little different in its size and base. Then, could we describe this change of shape with the simple term ‘mutation’?

The second change in Shin’s practice is her method of drawing. In the past, Shin made drawings by juxtaposing ceramics in harmony. But now in her recent work she starts drawing onto ceramics themselves. As she once mentioned, she has great passion for drawing. So she attempted to draw through her ceramics and created a kind of ‘pottery-drawing’. Yet this time, she draws directly on the clod with a pencil. As Shin draws on a piece of paper placed over a clay slab, pencil marks leave a trace on the paper as well as on the clay. Then she inlays slips in the thinly incised lines and fills the traces of drawing with clay. Depending on the ambience of drawings, sometimes, clay passes through these incised traces, like how wind and fog pass by. Once they are coated with glaze and are passed through flame, her drawings are merged with ceramics.

Historically, creators of notable pottery remained anonymous, as they didn’t belong to a single maker. A masterpiece of pottery involves various sensitive factors such as properties of the soil, the beauty of the shape, the skill for the drawings and patterns on its surface, the accurate temperature of the kiln, the quality of the glaze, etc. Therefore, on famous pottery, there was only the name of the kiln site and the time they were produced. Accordingly, the fact that one of the main tasks of the court painters was to draw on the pottery that was produced in the royal kiln is not a surprising story.

In her recent works, Shin draws directly onto her pottery. Shin is not only enthusiastic but also has been skillful in her drawings. Her encounter with ceramics naturally led to her passion to work with clay, however she composed a drawing out of the pottery she made. Now she draws directly onto the clay in her recent works. Since it is impossible to erase or revise once the drawings are engraved onto clay, all the drawings on the finished ceramic piece have to be done in a single attempt. These strokes imply a continuous breath that cannot stop or go backwards, like the thriving life of wild grass. It is about inscribing, not describing.

Therefore these drawings do not merely represent a shape of something. The artist must attempt to reveal how small creatures survive by struggling for life against humans. She might want to say that all living beings have reasons for living. Her work shows how trivial beings like dandelion, clover and asters could constitute a landscape all together, not by oneself but when they collectively spring up. Softly engraving the form of the wild grass on the earth, Shin expresses the sublimity of a strong vitality. After the long delay of twenty years, Shin’s drawings finally bloom like wild grass to convey the message she was longing for: the equal importance of the breath of all living things.

Each piece of pottery is perfect by itself, but some of them are installed together in series. Shin draws across multiple pieces of pottery that appear like wild grass, slowly rising together along the harsh wind, then lying down like a dying flame - as if they are breathing. Shin never tries to express everything at once. Her installation process is more like a mutual conversation between each element as she piles up the pottery or makes pottery that contains her older works. Can pottery contain all things at once solely by transforming itself? It needs more neighbors in order to embrace bigger things. Who can exist and breathe, by themselves? We only exist in relation to others. The earth as a basis for existing beings is equally given to every creature - it gives warmth to everybody. It seems rough but incessantly tender, appears to be soft but it speaks the truth more strongly than anyone else in the burning flame.

Now I come to understand. Starting her new project while making ceramics, Shin said she wants to explore the meaning of earth and experiment with new means of expression. But what could be the new method for the artist who has been working with ceramics for 20 years? How could she redefine her long relationship with the earth? But I grasp the point. The earth is the base of a newly made shape, a material that composes the base, and the mother of wild grass, who is the main character of the painting on the base. As if looking back upon oneself on one’s base of the earth, the painstakingly inscribed traces are filled by another earth again and eventually they are merged together. While embodying the basic form of her previous works that I have seen before, the artworks in this exhibition answer the essential question, about what of the earth that makes her work possible. The artist sensitively captures the changing of the earth and its implication in our lives. This means not to dismiss small meanings in life, like the parables of the wild grass, and to remember that the most splendid moments are in our daily activities rather than large and grander things.

The world demands people to be capable of everything. People who are proficient across multiple disciplines are considered to be “talented” in contemporary society. However, this idea is questionable. Even though the Internet has liberated knowledge from the ivory tower, how could a person master a sensitive work without a long-term engagement that puts together knowledge, experience, and skill? Thus, we need to reconsider the idea of multiple capabilities. Instead of trying to be good at everything, what is more important perhaps is to focus on one thing to its perfection.

This idea reminds me of Shin. I have asked Shin during our meetings if she makes her own dishes as a ceramic artist. Shin responded that her skills are limited to her art practice, unlike other people who are very masterful in making dishes. She added that a part of her project is in the pause, because she needs to change the type of clay and the temperature of the kiln according to the size of the work. She is the type of person who this era is calling for: A self-effacing and humble person with the unique voice no one else can mimic. A person who has dedicated all her life towards earth, but has the humbleness to say she could not figure out the earth yet. A person who says there is still much to learn, and so little she has grasped.

The wild grass tells Shin, “I am a living being rooted in the earth. My fearless life doesn’t last over a season without a promise for the next year. However, I will bloom my best all the days in my life. I will live fiercely without a side-glance. I am merely a grass but I will constitute a forest, and eventually become a landscape. This is my story of truth.” Shin replies to the wild grass, “Through your being, I met the earth, the root of life and the reality of my very existence. Dear wild grass, we thus share the same root. I wish your exuberant life! I will wait for your tenacious blooming every year and confront your infinite youth and utmost maturity without hesitation. Through these encounters, I will perfect my art with the earth that connects us. Through this encounter, I will perfect myself with the earth.”